책과의 만남
책의 저자 송길영 님은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사람들의 복잡하고, 널브러진 기록을 흔적 삼아 일상이라는 현상을 탐색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마치 산속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무수히 많은 별들 속에서 별자리를 찾아주고 이야기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별 하나하나에서 받는 느낌과 별자리가 주는 느낌은 묘하게 다른데, 사람이 부여한 의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좀 길어졌지만, 아무튼 좋아하는 저자라는 점에서 눈에 먼저 들어왔다.
하지만 금새 책의 제목에 눈이 갔고, 책을 들고 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핵개인"
내가 나를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 찾아왔던 것들이 책을 읽기도 전에 이 단어라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
일기예보가 우리 몸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시대예보는 우리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3대가 함께 살던 시절의 가족은 시간이 지나 산업화에 따라 삶의 형태가 바뀌면서 핵가족이 등장했다. 요즘에 말하는 가족은 그 시절 핵가족이 되었고, 3대가 함께 사는 것이 당연했던 가족은 대가족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제는 혼자서도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고, 함께 살더라도 상대방의 삶에 나의 자원을 많이 쓰지 않으면서 주체성을 갖고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저자는 이들을 '핵개인(Nuclear Individuals)'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제1장 K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참여하는 이들의 아이덴티티가 국가인 것입니다."
우리는 요새 알파벳 K를 어떤 단어 앞에 붙여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K-pop이 있고, 그 외에도 K-떼창, K-성질머리 등 한국인이 갖고 있는 특성 같은 것들을 표현할 때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대게 문화적인 것들에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K는 물리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영토, 즉 국가가 아니라 K라는 특성을 가진 문화를 말한다.
요즘 들어 국가는 결국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태어난 곳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다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흔하지는 않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고, 해당 국가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취득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시에서 기업들과 사람들을 유입시키기 위해 여러 혜택이나 복지 등을 홍보하는 것과 같이 이제는 국가가 전 세계 기업과 인구를 대상으로 좋은 시스템을 구축해서 국가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 흐름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국가의 의미가 없어질까도 생각해 봤지만 한편으로는 국가라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와 다양성이 국가를 정의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이런 생각이 떠올라서 많은 공감도 되었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오리너구리를 포용할 수 있는 세계"
"오리너구리를 수용하는 것뿐 아니라 본인이 오리너구리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계를 버리고, 감각을 벼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리너구리로 보이는 것이 좋았고, 드러나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사회생활을 하고 시간이 흐르다보니 어느샌가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의 네트워크를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선택한 모습이기도 하다. 때때로 다른 것에 대한 수용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이 부담이 되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오리너구리를 불러내야겠다. 물론 마음속에서
"언어 표현은 현행화를 게을리하면 다음 세대의 혐오를 받습니다. 대상을 타자화시키지 않도록 계속 사유해야 합니다."
"하나의 방식을 '정상성'이라고 강요하면, 하나 이외의 방식은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유니섹스(unisex) > 젠더리스(genderless), 성 구분 자체를 하지 말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의 성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는 세계에서 100위 수준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여러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개인 간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생각이 사회의 10 %의 임계점에 닿으면 주류 의견이 되고, 사회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좀 더 건강한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 나부터 건강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2장 코파일럿은 퇴근하지 않는다
"충주시 유튜브 운영을 맡고 있는 공무원은 주변 사람들의 직급이나 직장 등에 대한 여러 말들에 대해서 '제가 충주를 되게 좋아한다. 애향심이 있다. ...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충주를 잘 알리는 일이지 않냐. 그런 면에서 보람이 크다.'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사람을 직책보다 직급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AI와 합을 맞춘 핵개인은 '자리'가 아닌 '일'을 봅니다. 사회적 기여가 동반되는 일자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2023년은 특히 AI라는 키워드가 가장 뜨거웠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AI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거나 곧 들어올 것이며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각종 매체의 소리들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를 위협하는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우리가 사용해야 할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하고 맞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유용한 도구의 특장점을 생각해서 내가 도구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AI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보면 어느 정도 힌트는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카메라가 발명되었을 때 인류는 더 인간적인 것을 찾아서 가치를 부여하면서 미술이라는 영역을 더 넓고, 견고하게 발전시켜 왔다. 그 당시 카메라를 보는 미술가들은 지금 AI가 주는 여러 감정들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더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까?
"장마철 일기예보를 외면하고 하천 길로 나서는 무모한 산책객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대예보'에 귀 기울여 생존의 기술로 무장한 뒤 새로운 시도에 나서야 합니다."
이 책은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면서 느끼는 설렘, 기대, 두려움, 불안함 등의 막연한 감정들을 좀 더 가다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바라봐주는 점에서 정말 따뜻하다는 느낌이 든다.
제3장 채용 아니라 영입
"구성원이 다른 곳으로 이직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처우를 제공하겠지만, 그럴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회사는 급여를 올리지 않습니다. 거꾸로 개인의 이직 유동성이 커지면 조직은 더 존중하고 더 배려하고 처우 개선을 고민하게 됩니다.
...
기업들도 '공개 채용'에서 '인재 영입'으로 구성원을 찾고 있습니다.
...
영입한 구성원이 인재라면 육성과 개발은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자소서를 작성했을 때, 나는 아이작 뉴턴의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세상을 바라보라'라는 말을 곧잘 인용했다. 그만큼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거인은 내가 지원한 회사를 거인이라고 빗대어 표현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거인은 더 이상 회사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수많은 거인들이 존재하고 있고, 바로 내 옆에 그 거인이 있을 수도 있다.
제4장 효도의 종말, 나이듦의 미래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나'이다. ... 2006년생과 1989년생이 같이 '덕질'하는 풍경은 흔히 볼 수 있으며 그들은 친구입니다. 경계 없이 서로를 '존재'로 본다는 게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제1장의 'K'가 다시 생각났다. K는 국가라는 물리적으로 존재(실은 존재하지 않지만)로 인해 정의되지 않는 것처럼 여기서도 나이라는 물리적인 값이 아닌 서로를 '존재'로 본다는 것이 같은 맥락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흔하다 못해 식상하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이 말이 이미 진리를 꿰뚫고 있던 말이 아니었나 싶다. 상대방과 나를 어떤 잣대를 가지고 비교하지 않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가치간과 생각 등을 교류하는 것이 더 나은 우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훌륭해지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부양을 위한 도구로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돌봄의 끝은 자립이고
자립의 끝은 내가 나의 삶을
잘 사는 것입니다."
제5장 핵개인의 출현
"탁월한 사람은 그렇게 매일 자신을 선배의 자리, 권위자의 자리가 아니라 '신인의 자리'에 세우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은 사회 구성원 중 가장 작은 단위라고 할 수 있는 나라는 개인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여러 방법들과 질문들을 던지면서 시대예보를 하고 있다. 핵개인인 나라는 사람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가치도 똑같이 중요하다. 각자의 가치를 존중하고, 겸손하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이 어쩌면 앞으로의 사회와 우리들에게 가장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라고 얘기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핵개인으로서 핵개인에게 어떤 가치와 의미를 줄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핵개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읽고 나서
이 책이 저에겐 따뜻했지만, 누군가에겐 차가운 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 온도가 중도에 이를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 저자
- 송길영
- 출판
- 교보문고
- 출판일
- 2023.09.25